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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린다. 매주 두 번 학교 앞 산책로를 따라 약 10㎞ 정도를 달린다. 여러 사람들을 스쳐지나간다. 다정히 손을 맞잡고 걷는 커플, 마라톤에 도전하려는지 자전거로 달리는 딸아이와 호흡을 맞추며 힘차게 달리는 아빠, 재활을 위해 불 저신용자환승론 편한 몸으로 어렵게 발을 떼는 노인, 멀찍이 떨어져 함께 따로 걸어가는 노부부. 그 중에서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재미 반 운동 반으로 나온 젊은 가족은 항상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힘이 달리고 호흡이 가빠올수록 내 머리는 이상하리만치 단순해진다. 계속 맴도는 질문 하나. ‘너 혼자 이 타지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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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온 지 이제 5년이 다 되어간다.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하던 엄혹한 시절. 도착하자마자 비자와 국적 정리 문제로 외국인 출입국 관리소를 자주 드나들어야 했는데, 홀대받던 중국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옷도 신경 써서 입고 한국말도 또박또박하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코로나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학생과 채권추심행위 는 화상으로만 만날 수 있었고 학부 다른 교수들과의 교류도 매우 드물었다. 그렇게 별 성과 없이 아까운 이태가 흘러갔다. 3년이 더 지난 지금 학교생활에 조금 더 익숙해졌고 아는 사람들도 제법 늘었다. 미국 여권 소지자는 비자가 있어야 베트남 입국이 가능하다는 것도, ‘어렵다’라는 말이 ‘절대 안 된다’는 의미인지도 터득했다. 그럼에도 마흔 중반에 시작한 도고산 자취생활은 여전히 생소하다. 가족이 어떻게 떨어져 지내냐며 만류하던 아내가 순간순간 떠오르기도 한다.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야 적어도 후회는 덜 할 거라 생각했다. 가족을 위해 한국행을 포기한다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처와 아이들을 원망할 것 같았고 그것이 더 두려웠다. 그저 내 선택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될 뿐이라 생각했 수원직장인밴드 다. 하지만 5년 전 달러당 1120원 하던 환율은 이제 1400원을 넘나들고 커가는 두 딸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는 항상 지친 얼굴이다. 책임은 얼어 죽을.
후회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우리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후회는 그저 기분 나쁜 일이니 억지로라도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까.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그의 저서 ‘후회의 재발견(the Power of Regret)’에서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총 4824명의 표본조사를 통해, 약 82%의 미국인이 적어도 가끔은 후회를 경험하고 있음이 확인됐고, 가장 크게 후회되는 것은 가족(‘6개월 뒤 사별할 줄 알았더라면 아이들을 집에 두고라도 남편과 여행을 더 자주 다닐걸’), 배우자(‘혼자 사는 것이 두려워 결혼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때 더 용기를 내어 내가 정말 원하던 이성에게 청혼했더라면’), 교육(‘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을’, ‘다른 전공을 택할걸’), 직업(‘미래가 불확실해 포기했던 이직을 그때 했더라면’), 재정 상태(‘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투자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무리해서 그 집을 사지 않았다면 이리 힘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건강(‘담배를 그때 끊었어야 했는데’, ‘운동을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친구(‘그 친구는 십 년 전에 손절했어야 했는데’)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유사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결과는 대략 비슷할 듯하다. 못 배운 것이 후회를 지나 한(恨)이 된 우리 부모님 세대의 극성을 생각해 보면 교육에 대한 후회가 더 흔하고 강렬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또한 분석을 통해 후회를 네 가지로 유형화하였는데, 성실하지 못했거나 게을렀던 것,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 더 윤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던 것, 타인과의 관계에 더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 여기 포함된다. 이를 더 단순화하면, 후회의 근본은 현실과 이상의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 즉 현실의 내가 이상의 나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이다. 추구하는 자아가 책임과 성장, 혹은 윤리와 사랑 중 어느 것을 더 혹은 덜 지향하고 있는지가 다를 뿐, 이론상 후회는 이 두 자아 사이의 이격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저자가 말한 대로 이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기만 한다면 후회는 우리를 성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다툼이나 갈등이 관계에 대한 애착을 반증하는 것과 같이 후회는 우리가 아직 성장할 공간과 여력이 있음을 내포한다. 따라서 후회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며, 그 긍부정성은 오직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과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후회와 만회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이상향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더 성실하고, 더 담대하고, 더 윤리적이고, 사랑이 더 충만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러한 과정을 얼마나 오래 반복해야 하느냐다. 도대체 언제 우리는 후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통계를 다시 확인해 보자. 후회를 조금이라도 경험하는 사람이 전체의 82%라 했다. 이제껏 이야기한 후회의 평범성을 고려해 보면, 이제 나머지 18%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후회하지 않을까. 이유야 다양하겠으나 대체로 셋 중 하나일 듯하다. 우선, 현실과 이상의 자아가 일치하는, 즉, 득도의 경지에 이른 현자(賢者)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의 수준이 얼마나 성숙한 것일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다음은 후회할 수 없는 사람들. 당시의 실수가 현실적 자아의 눈으로 보더라도 터무니없이 멍청하거나 저열해, 이를 사실로 인정하고 후회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슬픈 경우다. 기억의 왜곡이나 재구성이 필히 수반된다. 끝으로, 후회하지 않기로 한 ‘쿨리스트(cool-IST)’. 과거에 얽매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좋은 수업 들은 셈 치고 넘어가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후회가 전혀 없는지 물어보라. 짜증 섞인 날 선 눈으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외부로 표출되지 않을 뿐 후회는 이미 그들의 속을 한 번 뒤집어 놓았으리라.
결과적으로 ‘평범한’ 이들에게 후회는 무한반복이 원칙이다. 후회의 카르마(karma)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 이 말이 다소 암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필자는 오히려 여기서 빛을 본다. 후회가 멈추었음은 더 이상 현실과 이상의 자아 사이에 좁혀야 할 간극이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며, 이와 함께 성장 잠재력 역시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만회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후회가 계속되는 이유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자아가 더 성숙했거나 그 초점이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과거 타인의 악행을 보고도 지나쳤던 자신에 실망하다가 이제는 직접 뛰어들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수치심이나 연민을 느끼거나, 지금까지 무탈한 삶에 안주하며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포기해 왔던 자기 모습에 비로소 회한(悔恨)을 느끼기 시작하는 경우다. 둘 다 현실의 자아를 성장시켜야 할 단초를 제공한다. 매번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 번의 결심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자아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마치 현실에서 이상형의 파트너를 찾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상형은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할 뿐, 이 드넓은 세상에서 그와 딱 맞아떨어지는 누군가를 만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현실은 반대로 작동한다. 이상형에 가까운 이를 콕 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상형에서 가장 먼 사람들부터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최종적으로 내 주위에 남는 이가 이상형과 그나마 가장 ‘덜 떨어진’ 현실의 대안이 될 뿐이다.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히며 후회와 만회를 거듭하는 것이 미련하나마 스스로의 자아를 조각해 이상향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후회의 질과 무게가 최저점을 찍는 그 순간이 자신의 이상에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심리학자이자 치료사인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평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을 같은 잣대로 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장을 측정하는 더 정확하고도 의미있는 방법은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라고 그는 조언한다. 그 누구라도, 그 무엇이라도 비교의 대상이 되고 마는 한국문화에 실로 신선하고도 의미심장한 자극이다. 후회의 질과 수준, 또 그 영역의 넓이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오늘의 후회가 어제의 그것보다 더 고상한 것인지. 어제까지는 하지도 않던 후회가 오늘 불현듯 밀려오지는 않는지. 그만큼이 우리가 어른이 되며 남기는 가장 확실한 흔적 아닐까.
필자는 얼마 전 번듯한 월세 아파트를 떠나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에서 매번 내 발목을 잡아 온 외국인 국적에 처음 감사함을 느꼈다. 원래 살던 곳 보다 조금 좁고 허름하지만, 저렴하고 학교도 코 앞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손으로 돌아온 월세 보증금. 경제적 여건으로 미국에 남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후회하던 한국행. 지금은 왜 조금 더 일찍 이리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남는다. 필자는 지금의 이 후회가 아주 조금 더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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